일상

관계

살랑이는봄밤 2008. 12. 30. 11:02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땐 따로 용돈이란 걸 받지 않았다.
간혹 엄마가 기분 좋으면 백원을 쥐어주시곤 했는데
그 백원은 50원짜리 돈부 과자와 20원짜리 사탕을 사고도
10원이 남는, 어린 나에겐 큰 돈이었다.


학교에 이쁜 여자애가 있었다.
짝꿍이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무한정 퍼주고 싶은 성격이어서
나는 고이 아껴둔 돈 백원을 주며 가지라고 했다.
그 친구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했고
나는 그 웃음에 홀려 다음날 또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거짓말조차 할 줄 몰랐던 그때
돈 백원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돈을 얻지 못한 채 등교 했고
그 친구는 백원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내일은 꼭 갖다줄께."

그 아이의 실망한 눈초리는 날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나는 죄인의 심정이 되어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날도 엄마에게 돈을 얻지 못했다.
엄마는 안그러던 아이가 자꾸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 가는 길은 지옥 같았다.
그아이의 비난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해서
자꾸만 되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풀죽어 등교한 그날 아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은 가져왔니? 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흘기며
"약속해놓고 왜 안지켜? 넌 나쁜 아이야!" 하며 쏘아붙였다.


내 발밑은 무너지고 있었고
도망쳐나오는 등 뒤로 그 친구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일이 있는 후 이틀도 지나지 않아
인구가 과밀했던 학교에선 새로운 반을 개설하게 되었고
나는 각 반에서 두세 명씩 차출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로 그 이쁜 여자아이와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은 내 평생을 지배하며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진다고 느낄 때마다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제 동생에게 한소리 들었다.
언니는 친구들한테 너무 퍼줘. 마음에 안들어.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