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일정은 비에이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 하는것>_<
넓은 초원을 신나게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얼른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삿뽀로에 수많은 호텔을 놔두고 이 호텔에 묵은 이유는 단 한가지, 나카지마 공원 옆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넓은 공원의 새벽 공기를 마시면 얼마나 상쾌할까 싶어 예약한건데, 이런이런. 전날 피곤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새벽 공기는 단잠과 함께 날아가버렸고, 체크아웃 하고 호텔을 나서는 길에 공원에 잠깐 들어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오~ 공원~ 아름답습니다~ (미수다 브로닌 버전)

삿뽀로 도심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다는게 놀랍고 부럽다. 손바닥만한 공원에 사람이 늘 북적거리는 우리 동네의 공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 영빈관으로 쓰였다는 호헤이칸.







공원 안에는 오리와 까마귀들이 무척 많다. 까마귀는 실제로 처음 보는건데, 생각보다 엄청 커서 가까이올때 무서웠다. 가방 두고 도망갈수도 없고, 사람들 몇몇이 근처에 있는데 쫓아내기도 그렇고, 까마귀가 종종거리며 옆에 왔을때 기겁해서 꼼짝 못했었다.

아침으로 어제 사둔 샐러드를 먹고 이제 비에이로 출발!
오늘의 호텔은 로이넷 에끼마에 호텔인데 거기에 들렀다 기차를 타려니 시간이 빠듯해서 그냥 역에 있는 보관소에 트렁크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루에 무려 450엔-_-;; 움직이면 모든게 돈이다.

기차를 타기 직전, 시간이 약간 남아 역에 있는 토산품 기념가게를 둘러보고있는데 젊은 청년들이 한켠에서 에끼벤을 팔고 있다. 옆에 붙은 홍보전단을 보니 오늘부터 팔기 시작하는 2007년 에끼벤 베스트 상품이랜다. 에끼벤 먹어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 냉큼 골라 계산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450엔.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열어보니 훈제 연어와 조재 관자 조림으로 된 단촐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초밥이지만 훈자라 거부감이 적고 냄새도 적게 나서 맘에 들었다. 조개 관자가 쪼매 질겨서 슬펐지만ㅡㅜ 평일 오전시간이다 보니 열차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샌드위치와 도시락을 꺼내 먹는 걸 보고 용기내어 먹었다.
기차에서 이런걸 먹다니 정말 특이한 경험이다.





아사히카와에서 내려 비에이로 가는 한 량 짜리 열차를 타고 gogo~





드디어 비에이 도착~!
날씨 좋고~ 햇빛은 쨍쨍이고~ 신난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하루 종일에 1,500엔에 산악용 자전거를 빌렸다. 어디선가 주워듣기론 여기서 기어 없는거 탔다간 다리 터진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어서;
(이자리를 빌어 그분께 대 쌩유베리감사. 당신 아니었으면 저 일본 기어다녔을거에요)





자전거를 빌리니 가게 할아버지가 비에이와 후라노 중 어디를 둘러볼거냐고 묻는다. 비에이 조금, 후라노도 조금 그랬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둘 다는 못 돌아다닌단다. 조금씩만 돌아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지인이 안된다니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어짜피 9월이라 라벤다는 없을테니 그럼 비에이나 돌자 싶어 비에이 코스를 선택했다.
할아버지가 손수 제작하신 비에이 지도에 빨간 펜으로 코스를 그려주신다. 내가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알아간 코스보다 약간 덜 도는 코스다. 체력 봐서 더 돌던가 그만하던가 해야지 생각하면서 지도를 받아들고 나왔다.

자전거에 작은 가방을 매고, 그 위에 저지를 빙빙 둘러 자리를 만든 다음에 지도를 얹어 고정시켰다.
mp3에선 클래지콰이의 알렉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고, 날씨는 화창한데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더없이 행복한 하이킹의 시작이다~!





캬~ 그림이 따로 없다. 햇빛이 너무 세서 사진이 오히려 어둡게 찍힌다.





해바라기 마을이 아니면 못볼줄 알았는데 뜻밖에 조그만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화사한 색에 마음까지 밝아지는 것 같다^^





낮은 구릉에 줄지어 핀 꽃들이 화사하다.
노출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이 아름다운곳 사진을 이따위로 찍으니 속이 터진다ㅡㅜ

갈래길이 여러군데 나오는데 당최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지도에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헷갈려서 잠시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 그를 세워 지도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할지 물으니, 마침 자기도 거기 갔다 오는 길이라며 길을 가르쳐준다. 그런데 잠깐 머뭇거리더니 하는 말이 언덕이 생각보다 힘드니 왠만하면 표시된 길 다 가지 말고 조금만 돌고 내려오란다. 이상하다~ 여기까지 오는데 별로 안힘들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러는거지?  일단 경험자 말이니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든 완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서 귀담아 듣진 않았다.





이렇게 한적하고, 포장이 잘 되어있는 길인데 그저 두 발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것을~
기어를 변속해가며 언덕을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점점 힘은 들지만 자연속을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 포기할 생긱은 전혀 없다.


 


심상찮은 구름떼의 습격.
이 사진을 찍을땐 넓은 구릉지가 평화로워보여서 찍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앞날 고생에 대한 전초전이었던것 같다-_-;;; 저걸 왜 뭉게구름이라고 좋아했을까. 먹구름이고만!






먹구름이 오거나 말거나 아직까진 평화의 시대~
지저귀는 새 소리 말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마저 눈에 띄지 않는, 리얼 하이킹의 진수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나무들이 가지런히.
여기 눈 올때 언덕에 나무들이 조로록 서있는게 참 멋있어 보인단다.




다 갈아엎고 흙만 골라놓은 밭.
여기에 라벤다가 피어있었을까?
아무리 8월이면 라벤다가 모두 지고 없다지만, 그래도 9월 초에 방문하는거니 어딘가엔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데도 없다. 쫌 실망이다.





슬슬 구름이 끼고 날이 어두워진다. 더불어 쌀쌀하지고 주위도 조금씩 음산해진다.
고작 햇빛량이 줄어드는 것 뿐인데 모든 사물이 변화하는 것 같다.







이게 나름 유명하다는 생각하는 나무. 평지에서 기울어진 모습이 특이하긴 하다.


여기서 나의 뻘짓 시작.
뭐든 몰두하면 그거만 생각하는, 좋게 말하면 집중력있고 나쁘게 말하면 주변머리 없는 나.
하이킹 코스를 완주해야겠다는 생각과 언덕을 넘어야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그만 지도에 나온 길을 벗어나고 말았다. 자전거 가게 할배가 그려 준 지도에는 비에이를 O 모양으로 한바퀴 돌고 내려오게 되어있었는데 언덕배기에서 힘들게 올라가다보니 꺾어져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직진해서 산 너머 다른 마을로 내려가버린 것-_-

아무리 길치인 내가 봐도 지도와는 길이 너무 다른거라.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없는 산길이다 보니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언덕을 내려갔는데, 평지가 나오면서 왠 마을이 나타난다. 이상하다 또 이상하다.. 비에이 코스에 마을이 없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에 소름이 쫙 끼치는데,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이거 아주 난감하게 돼버렸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니 내가 가보고싶었던 비바우시 소학교랑, 마에다 신조 갤러리랑, 이것저것을 다 포기해야 한다. 그럴 순 없지.

그렇다고 직진하자니 이건 분명 내가 갈 길이 아닌데.. 고민되네.

이도저도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마침 저 멀리서 차가 한대 지나간다. 냅다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인거 같으면 내가 가고싶은 곳에 데려다주길 내심 바랬는데, 보니까 작은 소형차에 가족들이 꽉 차게 앉아있다. 흑..

지도를 내밀며 여기가 어디쯤이냐고 물으니 자기들도 관광객이라 여기 위치를 모른단다. 실망감에 풀이 죽은 나를 보고 뒷자리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지도를 달라고 하셔서 한참 보시더니 어디를 짚어낸다. 여기쯤이라고 하는 곳을 보니 과연, 이 주변과 길이 비슷하다.

비슷한 이 곳은 어디냐, 산 너무 엉뚱한 마을이로다ㅠㅠ 내가 산 중턱에서 좌회전해서 내려갔어야 하는데 힘만 세서 바보같이 산을 넘어버렸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그래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았다는 생각에 새로운 힘이 난다. 감사의 인사를 표시하고 떠나는 차 뒷꽁무니를 보며 손을 오래오래 흔들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니 길에서 허비한 시간이 너무 길다는걸 깨달았다. 서둘러야 한다. 보고싶은거 하나라도 봐야 억울하지 않지.





 
드디어 찾았다. 마에다 신조 갤러리.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어느 날 사진에 눈을 떠 비에이 사진을 찍기 시작해 일본 전역에 비에이의 아름다움을 알렸다는 유명한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 이 사람이 사랑하는 비에이 언덕에 갤러리를 열어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꼭 가보고 싶어 무리해서 찾아갔다.

내가 지나온 그 길들이 진짜 이 사진의 그것과 같은 걸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찍는 사진이 많았다.
그치만 화집은 너무 비쌌고; 엽서는 가격에 비해 너무 조악해서 그냥 마음으로만 사진을 간직하고 갤리러리를 나왔다.





갤러리 뒤켠에 있는 생각하는 길. 자작나무 길이다T_T

갈 길은 멀지만 이런 길을 두고 어찌갑니까~ 나름 생각하는 척 하며 길을 잠깐 걸었다.
좋더라..

고속버스에서 단체 관람객들이 꾸역꾸역 나오길래 얼른 갤러리를 떠나 나왔다. 단체 관관광객들, 특히 중국이나 대만쪽은 그저 피하는게 상책이다.  일부러 그러는건 아닌것같은데 너무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
본인들은 그걸 알까?


갤러리를 나와 이젠 내가 원래 코스로 가려던 길에 들어섰다. 네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니 가져온 과자와 물을 바닥내고도 배가 고프다. 저혈당 증세가 약간 있어 배가 고프면 손발이 떨리고 정신이 없어지는 나다. 내 상태를 내가 아니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이 산중에 식당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어디 휴게소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하면서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다행이다. 언덕배기에 휴게소 작은게 눈에 띈다. 얼른 들어가서 둘러보니.. 먹을거라곤 음료수와 특산품 과자와(라벤다 과자라니!) 기념품으로 쓰일만한 만주 세트 이런거밖에 없다. 유제품으로 유명한 훗카이도라면서 휴게소에 우유 하나 구비해놓지 않고 뭐했느냐! ㅠㅠ 이리저리 먹을만한걸 찾는 내가 하이에나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이 떨리는 손을 멈추게 할 것을 찾고 있노라니 구석에 수줍게 써있는 밀크 아이스크림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훗카이도산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판다는데, 아 저거라도 먹어야겠다 싶다.

이온음료와 감자로 만든 쿠키,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가게를 나섰다.

 



아이스크림으로 허기를 채우긴 또 처음이다.
자전거를 타고 뒤뚱거리면서도 끝까지 먹었다. 자고로 먹는게 남는 법.







이제 슬슬 길이 눈에 들어온다.
훗카이도가 골프 여행지로도 인기가 많다는데, 이런 구릉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생잔디로 마음껏 골프 치면 좋긴 하겠다.





길이 쭉 뻗었다. 언덕이 아닌 이런 길은 이제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언덕에 있는 흰 정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치가 한눈에 보인단다.









아직 비바우시 소학교를 둘러보지 못했지만 슬슬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체력도 바닥났고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순순히 방향을 출발했던 쪽으로 돌린다. 가는 길에 곱게 핀 꽃을 보니 돌아오길 잘했다 싶다.





역시나 포플러나무 가로수길.
저 끝에서 좌회전하면 진짜 돌아가는거다.
장하다 이쭈. 오늘 고생 많았다!





광명이 비추는걸 보니 마음이 약간 울컥한다.
놀러와서 길 잃고 두려움에 떨었던게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밥을 먹으러 가야지. 이 시골짝에 유명한 튀김집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다.





내가 둘러본 길의 원래 모습은 저렇습니다요.





음식점의 외부 모습. 사전에 알아보고 가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만큼 전혀 음식점 답게 안생겼다.





여기서 제일 유명하다는 새우튀김 정식을 시켰다. 핀이 안맞아서 흐릿하지만 저 새우 실제로 보면 대하보다 크다.
세개를 먹으니 끝이 약간 느끼한게, 작은 양을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고, 기차를 기다려 삿뽀로에 돌아온 뒤 짐을 찾아 호텔에서 체크인을 했다.

 







새로 지어진 호텔이라고 해서 예약했는데, 과연 사람들의 평가대로 가격대비 깔끔하고 조용한 곳이다.
싱글룸이라 좀 좁긴 하지만 있을건 다 있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특히 욕조가 넓고 깊어서 온몸을 푹 담그고 쉬기에 딱이었다.

피곤하긴 하지만 삿뽀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밍숭하게 보내기 아쉬워서 길을 나섰다. 며칠간 계속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니 좀 지겹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이번엔 카메라를 놓고 그냥 나갔다. 길을 나선지 십분만에 후회했지만, 머리로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라고 혼자 위안삼아 본다ㅡㅜ)

그 유명한 훗카이도 청사를 잠깐 보고 지나쳐 스스키노 거리에 또다시 입성. 삿뽀로에서 대강 훑고 지나쳐서 아쉬움이 많았던 돈키호테에 들어가 사고싶은걸 왕창! 산다. 간식도 사고 휴족시간도 사고 입욕제랑 크림이랑 여러가지 샀더니 봉지 한가득이다. 들고다닐 생각에 잠깐 아찔했지만 그래도 쇼핑은 행복하다+_+

오늘도 어김없이 맥주와 안주를 사서 호텔에 들어왔다. 맥주를 매일 밤마다 마셨더니 아무리 힘들게 다녀도 살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뭐 어떠냐. 여행까지 와서 살찌는거 염려하면서 먹고싶은걸 참을 생각은 없다. 피곤한 하루의 끝을 맥주로 마무리하는 이 시간들이 내 인생을 손꼽어 가장 편한 순간중에 하나로 기억될것을 아니까.


티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가계부를 적는다.







 

한류가 있긴 있나보다. 여기저기 틀어도 한국 연예인들이 많이 나온다.
성류리랑 현빈을 일본 티비에서 보니까 좀 반갑더라. 일본어로 더빙해서 한국 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삿뽀로에서의 마지막 밤이 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