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삿뽀로를 떠나 노보리베츠에 들렀다가 이번 여행의 종착점인 하코다테에 간다.
전날 자전거를 빡세게 타서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짱하네.
파스를 미리 덕지덕지 붙여둔 덕분일까? 아님 내가 개-_-같은 회복력을 가진걸까?
전자이길 바라며 수줍게 파스를 떼어본다.

트렁크를 끌고 역으로 가는데 지나가며 보이는 것들이 새삼 감회가 새롭다. 꿈에 그리던 곳에 여행와서 매일매일이 신나고 즐거웠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또 언제 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사요나라 삿뽀로. 다시 올때까지 변함없이 아름답기를.





처음 올때는 트렁크 하나였는데 어느새 보조가방 가득 짐이 늘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선견지명에 스스로 뿌듯하다.





한국에서 기차를 타면 꼭 커피를 마시는데, 판매하는 분께 들으니 커피회사에 특별주문해서 만든거라 품질이 좋고 맛 또한 좋댄다. 어쩐지 맛이 있더라니.

일본 객차내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싶어 주문해봤다.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기에 망정이지 그냥 내뿜을뻔했다; 일본은 유난히 커피를 쓰게 마시는 것 같다. 200엔 정도지 싶었는데 무려 350엔-_-;; 비싸기까지.
 




노보리베츠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온천지라 지나는 길에 온천욕 해보려고 들렀다.
혼자 여행해도 할건 다 하고 다닌다. 하긴 혼자 다니니까 내맘대로 가고싶은델 다 가지. 동행인이 있으면  의견 모아야지, 하기싫은것도 해야하지, 영 마땅찮다.

노보리베츠에 큰 곰 농장이 있어서그런지 역 귀퉁이에 곰 한마리 세워놓으셨다.

마을버스를 타고 노보리베츠 온천장이 모여있는 지고쿠다니로 간다. 안내방송을 하긴 하는데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되도록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결국은 여기서 타보는구나.

종점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언덕배기에 큰 온천장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이런 곳에서 료칸에 묵으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온천도 하고 맛있는 카이세키 요리도 즐겨야하는데 말이지~ 그건 나중에 동행인이 있을때 하기로 하고 일단은 올라가보자.





웰컴 투 지고쿠다니.


 


도깨비 아저씨가 지켜주니 든든하시겠습니다.





온천장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연기 뿜는 바위산.  저걸 보니 유황 냄새가 갑자기 진해진 것 같다.





이야~ 엄청난 크기의 바위산 곳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이곳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싸고 난간이 잘 정비되어있어 가까이서 구경하기 쉽다.









유황천과 온천수가 만나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계십니다.
저 온천물에 발 담그고 싶은데 무지 뜨겁겠지?





온천수가 리얼하게 솟아오른다.
보통은 여기에 계란 삶아서 팔던데, 팬서비스 점수가 부족하네. 사먹을 용의도 있는데(-_-)





금방이라도 화산이 뻥 하고 터질 것 같은데 그럴리는 없겠지?


이 바위산 옆쪽으로 산책로가 쭉 이어져있는데 20분 정도 올라가면 하천에 진짜 온천이 흘러서 발을 담글 수 있댄다. 정말정말 땡기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눈물을 머금고 패스. 난 온몸을 담구고싶어용.


 


여기가 내가 온천욕한 다이이치타키모토관. 이 동네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곳이다.
정문은 다른쪽에 있고 나는 일일입욕객이므로 후문-_-으로 들어갔다. 한번 입욕하는데 2천엔으로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온천의 종류가 무려 11가지나 되고 탕도 넓고 서비스도 좋아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 목욕용품도 모두 비싸고 좋은 것들이었고 특히 낮 시간엔 입욕객이 거의 없어 내가 갔을 땐 어떤 가족과 나 뿐이어서 마음껏 욕탕을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었다. 각각효능이 다른 탕을 돌아다니며 입욕하느라 나중엔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중 제일 좋은것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노천탕!!
나무로 주변을 둘러싸서 경치도 좋고 외부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안심이었다. 뽀얀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시원한 바람을 쐬니 이렇게 좋을수가~ >_< 이 좋은 곳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꼭 모시고 여기에 와봐야지.

사진 한장 찍지 못했지만 그래서 그곳의 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통 유리창으로 된 탁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입욕한 일, 노천탕에서 바람 쐬며 낙엽 주운일 평생 잊지 말아야지.

온천욕에 심취해서 기차 시간이 다 되는것도 몰랐다. 서둘러 정리하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지나가는 길에 기념품 파는 가게가 많다. 노보리베츠의 특산품중에 입욕제가 그렇게 좋다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15분에 한번 있는 마을버스를 타려면 지금 내려가야 하는데, 코앞에서 가게를 지나치려니 발이 천근만근이다. 잠깐이지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데 몸은 이미 기념품가게로^^;; 들어가서 입욕제쪽으로 가 뒤적뒤적하니 여행사이트에서 추천했던 바로 그 제품이 있다. 쾌재를 부르며 계산하고는 바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버스는 내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왔다. 1분도 시간을 어기지 않는 일본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기차를 타러 왔다. 사람들이 기차를 찍길래 나도 한 컷.
일본 사람들은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기차여행을 좋아하고 기차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고 한다.





기차에 타서 삿뽀로에서 미리 사둔 도시락을 편다. 아침을 굶고 온천욕까지 했더니 뱃가죽이 노래를 부른다.
이것도 무슨 콘테스트에서 상 받은 도시락이란다.


 


캬~ 푸짐하다. 훈제 연어 초밥에 비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밥 위에 연어알과 계란 체친것을 덮었고 그 위에 조개관자, 메추리알, 이름모를 검은 해조류, 연어구이 등이 올려져있다. 짭쪼롬한 그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전 지금 화창한 날에 기차에 앉아 맛좋은 에끼벤을 먹고 있습니다. 

아아아 자랑하고 싶다. 나 너무 행복하다고.
도시락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이래서 민생고 문제는 시급한거다.





흐릿했던 노보리베츠를 떠나니 날씨마저 화창하게 바뀐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아이스크림을 샀다. 훗카이도의 유제품이 그렇게 맛있다네. 300엔.
부드럽고 고소한게 맛있긴 맛있다. 한국에선 이 돈주고 사먹진 않겠지만, 뭐 여긴 일본이니까.
(이런식으로 돈 꽤 많이 썼다;)





멋있었던 외국인 노부부. 지도를 보며 여행 루트를 점검하는건지 짜는건지.
나중에 나이들어서 남편과 저렇게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오타루에 갈때 오른쪽에 앉으라는 글은 봤어도 하코다테 갈때 왼쪽에 앉으라는 글은 본 적이 없다. 이래서 아는게 힘이라고 하는거다. 왼쪽에 예약했으면 환상적인 뷰를 감상하며 여행할 수 있었을텐데.





드디어 하코다테에 도착. 1층 인포메이션 센타에 가니 한국어로 된 지도가 있다. 현지에서 얻는 지도가 제일 유용하게 쓰이기때문에 얼씨구나 하고 얼른 챙겨나왔다.

여기서 묵을 호텔은 작은 부티크 호텔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제일 좋은 숙소에 묵으려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서 예약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호텔에서 픽업서비스를 나온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10분이면 찾아갈 거리라고 해서 그냥 요청하지 않았다.

-_-

호텔 찾아가는데 한시간 걸렸다..
이 타고난 길치.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직진인데 그냥 바로 직진해버렸더니 이상하게 지도하고 길이 안맞는다. 중간에 깨달았을땐 이미 20분 넘게 직진해버린 상황. 택시를 탈까 하는데 길에 택시도 없고 전차만 휙휙 다닌다. 전차 정류장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냥 걸어가면서 시내구경도 하고 호텔도 찾아가기로 했다.
트렁크 끌고 걸으니까 진짜 빡세더라..






야속한 내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차는 잘도 달린다.
운치있어 좋다.







일본에서 고양이를 자주 봤는데 하나같이 털이 탐스러운게 예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잠깐 밖에 나온걸까?





옛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하코다테 팩토리. 기념품을 파는 곳인데 시간이 없어 못가봤다.
 




하코다테에서 최초로 생겼다는 우체국 건물이라는데 지금은 1층을 터서 기념품 가게로 활용되고 있단다.





이게 내가 예약한 시본 호텔.
작은 부티크 호텔이라더니 정말 작다;

그래도 호텔이랍시고 서비스는 정중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직원이 손수 짐을 맡아들고 안내데스크로 데려간다. 단독으로 직원과 앉아 체크인을 하는데 밥 먹는 시간이나 객실내 서비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준다. 설명은 짧게 하란말이다.. 길게 말하면 내가 대답을 단어로 할 수 없잖니!





이게 내가 오늘밤 묵을 방.
뭐래니.. 빨간머리 앤 컨셉이라고 해서 흥분했었는데.. 시골컨셉이니..?





실망을 줬다 기쁨을 줬다 여러가지 한다. 어메니티는 에트로 제품들이네. 여기서 호감도 급 상승.





냉장고에 있는거 다 무료라고, 아까 과하게 친절했던 직원분께서 말씀하셨었다.
샴페인 잔 센스 굿이다. 뒤에 살포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삿뽀로 맥주가 보인다. 넌 오늘밤 내 침소에 들거라.





구비해놓은 제품들의 품격을 보니 여기가 호텔은 호텔인가보다. 구구절절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여기저기에 사랑-_-의 쪽지를 붙여놓아서 좀 웃기지만, 친절하게 받아들이자.(사진엔 없지만 테이블에도, 티비앞에도, 심지어 욕조 손잡이에도 쪽지가 붙어있었다)





깜찍한 엔틱 열쇠.
뭐 저걸로 보안이 되겠냐만은 상징적인걸로 받아들이자. (받아들일거 많다) 어짜피 너무 작은 호텔이라 도둑님이 관심 안가지게 생겼다.





가방 터지기 직전. 끌고다니는 내 속도 터지기 직전. 다시는 하드커버 들고 여행다니나 봐라.
(얼마전에 소프트 케이스 구입했다)





내 방 앞에 있는 복도 장식.
직원과 나밖에 없는 소박한 인원구성때문에 차마 사진은 못찍었지만 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들이 곳곳에 꾸며져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챙피한거 따지지말고 이곳저곳 호텔 구경 했어야했는데, 사실 그때 직원은 좀 잘생겼었고, 나는 온천욕 하고 와서 머리 질끈 올려묶은 노메이크업이어서 겁나 쪽팔렸거든-_- 어서 자리를 뜨는게 그때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더랬어.

무사히 체크인하고 가방을 내려놓았으니 슬슬 하코다테 구경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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