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창비


살면서 깨달은건
나이가 들면 딸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부탁해, 라는 말은
어쩐지 무책임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엄마도 여자이고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딸일 뿐이라는걸
조금 더 일찍 얘기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작가 역시 이 책을 쓰기 시작한게 6년 전이라고 하니
그때 나왔으면 어땠을까.


한 개인의 희생으로 지탱되는 집안이라니,
위태위태하다.
그 구심점에서 사지가 찢어지도록 애썼을 사람.
엄마
엄마


나는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여자이고 딸이고 싶다.
그것이 내 엄마에게
딸을 평생 지고 가게 만드는 또하나의 짐을 얹어주는것 같지만.




에이브라힘 키숀 지음.

처음엔 풍자라던가 해학적인 글이 쉬운 글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문학적이라거나 지적인 토양 없이는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글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중궈나 니뽄보다 더 싫어하는게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인데
(그들의 팔레스타인 공격은 백번 이해해보려 해도 도저히 납득 불가능)
이 작가가 유대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책을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창작품이라면 작가의 출신을 잊고 뛰어들 수 있을텐데
생활에 밀착한 작품은 어쩔 수가 없어.



내가 가끔 기분 좋을 때 쓰는 글이 이런 글과 닮았다.
역시 내 글은 문학적인 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_ㅠ

<가을이 오면>
p.10
좀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는 그녀가 오직 손대지 않는 것은 미끌미끌한 미역국이나 미역초무침뿐이었다.
미역 건더기의 느낌은 흔히 딸의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어머니들이 딸에게 던지곤 하는, 미끈거리고 천덩거리는
바로 그 눈빛의 질감이었다. 딸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 빈틈없는 어머니란 딸에게 얼마나 크나큰 재앙인가.

p.13
여름이면 한층 심해지는 알레르기때문에 그녀는 땀이 흘러 따끔거리는 이마와 볼을 연방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발목에 짧은 그림자를 매단 채 정처 없이 시장통을 헤맸다.

p.15
여성적 우아는 세상에 대한 진정한 초연함에서 오는 법. 남성들이 짐짓 취하는 초연한 자세는 언제나 가장된 것이란다.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연루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그러나 여자들은, 특히 우리네 우아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세상을 빼앗긴 대신 세상으로부터의 초연함을 얻었단다.

p.16
그들, 그들, 어머니를 대신하는 변덕스럽고 무자비하고 수다스러운 세떼들, 그들의 부리가 쪼는 곳은 어김없이 그녀의 헌데였고
염탐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그녀는 항상 아프고 수치스러웠다.

p.17
사람들은 어찌 감히 사랑 같은 것을 갈망할 수 있는가. 모녀간에마저도 피할 수 없었던 저 사랑을 망치는 사랑을, 사랑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진 저 살아 꿈틀거리는 해초의 흡반을, 뜨거운 용액이 목구멍에 들이부어지는 저 우아하기 짝이 없는 고문을.

p.30
그녀의 어머니는 초식동물처럼 아슴아슴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 잇몸 같다고나 할까. 그만큼 분홍빛이고 말랑해 보이는 어머니.
(...) 잇몸 같은 어머니는 실은 날간처럼 싱싱하고 붉었고, 미역처럼 미끄럽고 천덩거렸다.

p.39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 내부를 불지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옥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그지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분홍 리본의 시절>
p.45
나는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에 매료되었다. 커다란 매대와 넓은 통로로 이루어진 그 거대한 공간은 
내 오피스텔을 바로크적으로 뻥튀긴 형상이었다. (...) 좁은 직사각형의 오피스텔에 길들어가는 나의 가엾은 육신에
심원한 야망을 심어주기 위해 거의 매일 밤 쇼핑카트를 몰고 마트 안을 질주했다.

p.68
수림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무슨 시를 외운 걸 계기로 내 서가에 꽂힌 시집이란 시집은 모조리 술자리로 불려나와 수청을 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p.75
나는 무슨 변명인가를 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조여들면서 혀뿌리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혀뿌리가 고치처럼 툭 터지면서 팔랑거리는 두 개의 날개가 돋아났다. 두 개의 혀는 서로 얽혀들고
리본처럼 꼬였다. 그녀에게서 터져나온 말인지 내게서 터져나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 자지보지를
처음 배워 속으로만 수없이 되뇌던 유년의 어느날처럼 말들이 싱싱하고 낭자하게 튀었다.


<반죽의 형상>
p. 163
자신감과 활기로 펄떡거리는 모든 것들이 혐오스러워지는 때가 있다. 그때는 모름지기 은거하여 나 외에 혐오할 것을 
남겨두지 않는 게 좋다. 대상에 대한 혐오 속에는 자신과의 깊은 유사성이 깃들어 있다. 닮았기에 싫은 것이다.
모르는 것은 미워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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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이상 문학상에서 처음 알고
어떤 이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됐는데

권여선 작가님♡

'가을이 오면' 단편 최고에요.

*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아들을 환상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아들, 세일즈맨의 비애,
어떤 집하고 자꾸 오버랩된다.
희곡 과제 하려고 샀었는데 이강백 작품 말고 이걸 할걸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건 감정이입이 확실히 됐다는 증거다.
암울한 점은 이것이 오십년 전 작품임에도 현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단점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 괜찮은 표현

- 빌딩의 옥상 위에는 왕관을 쓴 것처럼 저마다 거대한 광고판이 올려져 있었고 그 광고 속에 들어 있는 예쁜 여자들은 맥주나 샴푸 같은 것을 손에 하나씩 들고 이런 상품을 가지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국세청 건물은 신축 건물이라 그런지 깨끗하기도 했거니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저런 곳에서 세금을 거둔다면 정말 공정하고 투명하게 세금을 걷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국세청 건물 앞의 광장에 서서 그 웅장한 건물을 천천히 바라봤다. '내가 낸 세금이 모두 저곳으로 흘러 들어갔구나'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  전단지에는 하늘로 재림하는 예수의 그림이 담겨져 있었고 아래쪽에는 사탕 두 개가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그는 천국 가는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탕 두 개를 입 속에 넣고 천천히 빨아먹었다.

팔레스타인 동네에서 이스라엘 동네에 폭탄 테러를 했다. 이스라엘은 곧 팔레스타인에 미사일로 보복 사격을 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서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미국에게 우리 전사들의 목숨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복수를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 증표로 미국의 유수한 컴퓨터 회사와 항공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후에는 뉴욕의 다우 지수가 소폭 떨어졌고 뉴욕보다 몇 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동경 증권이 소폭 떨어졌고 동경 증권보다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한국 증시가 대폭 떨어졌다. 그리고 증시와 중동의 유가 불안 때문에 어쩌면 생필품의 물가 상승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뉴스는 전했다. 그는 여기서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사막 동네에서 폭탄이 하나 떨어졌다고 당장 동네 슈퍼에서 라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간단 감상

성추행범으로 몰렸던 남자가 s전자 직원으로 밝혀지는 순간 '이런일을 할 분이 아니다'라며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
일을 그만두자 사람은 사라지고 무용지물인 껍질만 남아버렸다
여기서 프라이데이는 정형화된 이 사회와 구성원들을 말하는 것 같아

* 난 늦어요. 스무 살이 넘어서 알았어요. 재수하고, 휴학하고, 졸업도 늦게 하고, 심지어 여기 오는 것도 남들보다 늦었어요.
난 도저히 시간을 못 쫓아 가겠어요. 어느날 깨달았어요. 어짜피 다 늦는데, 몇 살에 뭐 해야한 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만 피곤하구나.
그냥 나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 시간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에 대한 부담을 버리자고 생각했죠.                                                                        - 박경미


* 그날도 '마약동네' 지나 '사탕수수동네' 지나 '매춘동네' 지나서 '전과자 동네'를 지나가는데, 어떤 남자가 칼을 들고 서 있어요.
마약에 취한 것 같은데 갑자기 나한테로 달려오지 뭐예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서 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아세요? 아이들이 막아서는 거예요. 나를 자기들 몸으로 에워싸고, 그 위로 다른 아이들이 손을 뻗어
공간을 만들면서. 어떤 아이는 달려오는 남자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어요. 칼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전에 총으로 위협당한 적도 있지만, 그것과는 달랐어요. 그때는 총을 들고 위협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나를 찌르려고 달려드는
거였으니까.
그날 많이 울었어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그게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인지도 몰라요.    
(...)
아이들에겐 애정이 필요해요. 여기 아이들은 애정은 커녕 밥을 굶어요. 네다섯 살 아이들이 밥을 굶어요. 영양상태가 안좋으니까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모기에 물려도 죽어요.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피시방에서 게임하다 죽어요.
아이가 죽으면 성경책 찢고 싶을 때가 많아요.                                                                   - 이기원


* 캄보디아 빈민촌의 에이즈보균자가 10퍼센트 정도 되니까 지나가는 사람 열 명 중 한 사람은 에이즈 환자예요. 그런데 어떤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에이즈에 걸린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있고 또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에이즈로
죽어간다고 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지금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요. 어짜피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지금 행복하게 사는 데 잘 훈련된 사람은 그 일이 닥쳐도 계속 행복할 수 있어요.  - 최정규


* 난 내가 선택한 이 길에 만족하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돼요. 내가 뭘 해야겠다고 아등바등 힘쓰면
더 안되는 것 같아요.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는 걸 경험했어요. (...) 왜 병원을 그만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고 대답해요.
언젠가부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있으니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면 주는 거죠.
나로 인해서 누군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게 내 행복이에요.                                                - 양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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